오늘 제가 하려는 말의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어느날 데이트를 하러 갔는데 애인이 내가 입고 온 빨간 옷을 보고 
기분이 나쁘고 속상하다는 감정을 토로합니다

그럼 과연 이 때 미안해 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닐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저는 해야 된다입니다

절 까려거든 여기까지만 읽고 까지 마시고 끝까지 다 읽고 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신체적 아픔과 마음의 아픔

신체적 아픔으로 먼저 이야기를 해봅시다
애인과 놀러 갔다가 방금 전에 애인이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아프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괜찮아?" "많이 아프겠다." "어서 병원가자." 등의 말을 하겠죠
이 상황에 아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굉장히 매정하고 나쁜 사람으로 보이실 겁니다.

1. "넌 왜 아파하는거지? 어쩌라고?"

2. "난 아무짓도 안했는데? 너 혼자 지금 넘어져서 아픈거잖아. 근데 왜 나한테 그래?"

3. "내가 너보다 더 아픈데 지금? 나 사실 폐렴이야"

4. "왜 이 상황에 아픈거야? 나 바쁜데 너 때문에 얼마나 난감해진지 알아?"

이런 말을 누구도 하지 않죠
하지만 감정적인 아픔에 대해서는 후자로 반응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난 니가 빨간옷 입고 온 거 보고 너무 지금 놀라서 마음이 아파"

이 상황에서는 동일한 아픔의 토로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많이 우울해?" "진정해"라는 말보다
오히려 아래의 (위의 보기와 똑같은 매정한) 말을 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1. "내가 빨간옷 입고 온 거가지고 왜 기분이 안 좋아? 어쩌라고?"

2. 난 아무짓도 안했는데? 빨간옷이 어때서 이거가지고 그래?

3. 내가 너보다 더 기분 안 좋아. 놀러 와서 검은 옷이 뭐야?

4. 모처럼 잘 놀러와서 왜 또 기분이 안 좋다 그래? 안 그래도 나 바쁜데?



2. 이유

이런 이유가 발생 하는 것에 대해서 간단히 말을 해보면

1. 미안하다는 말이 나의 잘못의 인정이라고 오해하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나아가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2. 마음의 아픔은 객관적으로 측정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한국인이라고 찝어서 말을 한 것은 한국인 비하가 아니라
한국말의 사용되는 특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나 어제 밤에 강도를 만났어 라고 말을 하면
외국인들은 "i'm sorry"(유감이다)라는 말을 합니다만
이겨서 sorry가 의도하는 바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가 아니라
너를 걱정하고 너의 감정적 불쾌감에 나도 공감되어 염려가 된다, 정도입니다

한국말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표현이 유감이다. 미안하다. 두 가지 정도입니다.

유감이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죄송하다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음을 시인하고 인정 할 때에만 사용되는 말이니
위의 보기와는 다른 표현입니다

유감이라는 말이 거의 비슷하긴 한데
정치인들이나 쓰는 표현이고 문어체로만 등장하는 표현이지
실생활에 유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특히나 젊은이들은 거의 없죠

그럼 마지막 남은 대응되는 표현이 "미안하다"인거고
유감입니다에 비해서는 실제로 많이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미안하다조차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은 마치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표현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죄송하다와 달리 내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용 가능한 표현입니다

이걸 좀 더 이야기해보면 외국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sorry 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미안하다"(x) - 책임을 인정 여기선 sorry가 "죄송하다"로 읽힐 여지가 있죠
"당신이 교통사고로 인해 많이 놀랐다니 나도 유감이다"(o) - 나의 책임에서 벗어난 표현입니다
라는 식으로 의미를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하기는 합니다 

전자처럼 발언을 하면 법적으로 불리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유재석님께서 방송을 하다가 왠 터무니없는 걸로 화를 내는 노인분을 인터뷰한다고 합시다
그럴 때 유재석은 대부분 미안하다고 하면서 웃음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중에 잘못을 저질러놓고 미안하다는 말 없이 끝까지 말을 돌리면서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재석이 "자존심도 없는 사람" "한심한 사람"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유명인을 보며 "멋진 사람"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안하다는 하면 할 수록 내 자존감이 깎이고 내가 한심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정반대라는 겁니다
내가 관대하며 공감 능력이 좋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인 겁니다

애인이라는 사이는 당연히 상대방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아프다면 걱정해주고 신경 써주는 사이입니다

상대방이 터무니 없는 것으로 화를 내도 미안하다고 해야 된다는 말인가?

제 대답은 네 그렇습니다이고, 왜냐하면 미안하다는 말은 나의 잘못의 시인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상대방의 감정적인 아픔에 대해서 내가 공감한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인이라는 것은 당연히, 상대방이 아플 때 같이 공감해주고 아파해주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이 안 나온다 그러면 이렇게 말을 해도 됩니다

""난 니가 빨간옷 입고 온 거 보고 너무 지금 놀라서 마음이 아파"
"니가 마음이 아프다니까 염려스럽다"

이것도 못하겠다고 하면 하다못해 이렇게라도 말하면 됩니다

"빨간옷을 보고 니가 많이 놀라서 마음이 아프구나"

이건 화술에서 가장 기초적인 빽트래킹입니다

"나 오늘 너무 심심해"
"넌 오늘 많이 심심하구나"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고

빽트래킹은 아주 손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공감을 잘해준다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기초적이면서도 효과가 좋은 화법입니다
(일반론적으로는 남자분이 여성분을 꼬시고 싶을 때 적절히 사용하면 정말 효과가 좋습니다...)

제가 미안하다는 말을 추천하는 이유는 가장 짧고 간단하고 단순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다. 나도 걱정되고 염려된다. 니가 많이 아프구나

이런 표현들은
"우리는 애인 사이이며, 애인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아플 때 나도 같이 신경 써 준다는 말이며,
나는 너의 감정에 공감하고 지금 신경을 쓰고 있다. 우리 사이는 문제 없다"

이런 말들을 다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3. 이유2

마음의 아픔은 객관적으로 측정되기가 어렵다는 말에 대해서 더 해보겠습니다

빨간옷 입고 왔다고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참 성격 이상하네 하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애인이 사실은 빨간옷을 입은 괴한에게 몇년째 스토킹을 당하고
납치 감금을 당했던 끔찍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생각 해 봅시다

아마 이정도 조건이 되면 미안해 하는 것이 맞지 않나? 라고 생각 하는 분들이 아마 위의 상황보다는 더 많아질 겁니다

신체의 아픔은 아주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딱 보기만 해도 알 수 있고 혹은 진단명만 들어도 걱정이 가능하죠
마음의 아픔은 반면 굉장히 주관적입니다


예를 들어 볼께요

30대 커플이 5년째 연애를 하고 동거를 하는데
성관계를 1년에 1번 정도 합니다

한쪽이 정상적인 성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만이 발생하겠죠
그런데 반대쪽은 성관계를 하기는 커녕, 그런 상황 자체에 대해서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성욕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고
연애라는 것은 성관계보다 정신적 소통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본인이 판단 할 때에 이것은 미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어떤 여자가 남자사람친구와 밤새도록 술을 먹었습니다
이를 본 애인이 헤어지자고 하죠
왜냐하면 그 남자는 공대생이고 그는 애인 외에는 여자사람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으며
그의 생각엔 남녀관계에 친구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밤새 술을 먹던 남녀사이를 자신이 인생 살면서 보았을 때
항상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왔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자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사람친구가 굉장히 많았고
밤새 술을 먹고 심지어 같은 방에서 잠을 자도 아무런 일이 없었으며
어제 술을 마신 친구는 초등학교때부터 알던 동네친구라서 정말 조금도 걱정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미안 해 할 필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커플들은 당연히 헤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본인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행동에 대해 서운해하는데
그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는가 혹은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런 예는 정말로 셀 수 없을만큼 무수히 많습니다

반말을 하면 날 만만하게 본다고 생각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고
존대말을 하면 날 아직도 거리를 두고 대한다고 생각해서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죠

제가 지금 하려는 말은
"내가 반드시 납득하거나 이해되지 않더라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키도 다르고 얼굴 생김새도 다릅니다
"당연히" 마음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각자 상처 받는 부분도 다릅니다
이건 이상하거나 괴상한 일이 아니라 몹시 당연한겁니다

모든 사람이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상대의 아픔에 내가 납득이나 공감이 잘 가지 않는 것은
괴상하고 괴이한 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반드시 다 이해가고 납득가고 공감 갈 때에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상대방의 마음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해준다는 것은)
마치 나와 얼굴이나 키가 비슷하게 생긴 사람과 친하게 지내겠다 정도로 무모한 일입니다

게다가 동성애자보다 이성애자가 더 많을 것인데 남자와 여자는 애초에 뇌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굉장히 마법같은 말입니다
일단 아주 짧고 단순하며, 대부분의 상황에 사용 가능합니다

길을 가다가 눈을 마주쳤을 경우에 30분 넘게 치고 받고 싸우느니 "미안하다" 한마디만 상황이 종료됩니다

애인이 서운한 감정을 조금 토로 했을 경우 과연 누가 더 서운한 것인가
과연 누가 더 서운할 자격이 있는가로 혹은 지금 누가 더 힘든가에 대해서
과거사까지 1시간 넘게 말씨름하느니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면)
미안하다 한마디만 하면 둘 다 사이좋게 1분만에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반드시 내가 상황을 납득해야만 미안해 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위의 두 커플의 경우에는 
각기 해결방법이 다 다릅니다

평균적인 30대의 성욕에 대해서 좀 공부를 한다면, 
공대생 남자와 문과생 여자의 이성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상황을 다 공부하고 이해하고 공부한다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혹은 두 커플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습관을 가지면 됩니다
나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상대방이 이 일로 인해 가슴이 아픈 것 같으니 나도 유감을 표현하려고 하면 됩니다

어느쪽이 인생 살기 더 편하고 쉽습니까?

게다가 언급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것은 나의 품위나 품격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정말 터무니없는걸로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됩니다

만일 상대방이 비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내가 대화를 시도해봐야
싸움 밖에 안 나므로 소모적인 말다툼 밖에 안되는거고
이런 사람하고는 헤어지면 됩니다

상식적인 사람인데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랬다면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본인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걸로 화를 냈다는 것을 깨닫고 사과를 해올겁니다

그럼 그 때 앞으로는 터무니없는걸로 화를 내지마라고 주의를 주면 됩니다

터무니 없는 걸로 자주 화를 낼 경우에
상대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회피형인가 불안형인가 
등에 따라서 대처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말이 길어지므로 이건 다음에 기회되면
이야기해보겠고
사과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음에 기회되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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